원장의 글

청년연합집회가 있었다.

은혜의 부르심을 받고 길을 나섰다.

청년이란 단어 속엔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 있다.

기차에 올라 24시간을 갔다.

한국인인 내게 24시간 기차를 탄다는 건 상당히 생소한 일이었다. 처음엔..

이젠

오히려 평온함이 느껴진다.

분주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얻었으니

초저녁..

일찍이 간이식 침대에 몸을 누이고 한동안 부족했던 잠을 청했다.

이내 잠이 들고

얼마를 잤는지

눈을 떠보니

여전히 흔들리는 차창 밖으로 어슴푸레 날이 밝아 있었다.

꽤 오래 잤나 보다.

아직 다른 승객들은 깨지 않아 고요한 차내

혼자 우두커니 내다본 창 밖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이 보인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이 넓은 땅에 씨를 뿌렸을까

얼굴 없는 그 누군가가 무척이나 크게 여겨졌다.

몇 시간 후

나도 새로운 밭을 만날 것이다.

오늘 나의 씨 뿌림에도

얼굴은 없어도 좋겠다.

다만 주께서 기뻐하시는 결실들로 하늘이 풍성해질 수 있다면..

뿌리고 또 뿌리다가 사라지고 싶다.

갑자기

광활한 옥수수 밭 한 가운데 뾰족하게 우뚝 서있는 돌산 하나가 눈에 띈다.

결실들을 누가 상할까 지키는 허수아비처럼

거룩한 외로움

내 속 사람의 미소 지음이 느껴진다.

벗으로 삼아야겠다.

그가 허락해 준다면..

천국의 가을을 기리며..

작성자
bethelo
작성일
2023-02-19 05:30
조회
272
가을에 밤 따먹으러 꼭 올 거예요.

다시 올 수 있을까..
가을이 되려면 아직 3개월은 더 지나야 할 텐데…
그 때까지 살 수 있을까

난소암 환자가 떠나며 환하게 남긴 말 때문에
가을을 향한 간절함이 생겼다.
아직도 이렇게 무더운데
아직도 이렇게 여름다운데
언제 가을이 올는지..

그도 알 텐데..
그 때까진 어렵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님 모른 척 하는 걸까,
자기자신에게 까지도..

그래.. 그래.. 우린 서로 모른척하는 거다.
떠나는 이도, 보내는 이들도 다 안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그치만 우린 모른척해야 한다.
그리곤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을
오늘도 모른척하고 해야 한다.

다시 만날 약속을 하며 우린 운다.
그 눈물이 모른척하고 있다는 증거지만 아무도 내색하진 않는다.
그것이 이곳의 보이지 않는 불문율이니까..

죽음 앞에 서 본적 없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는 말..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오겠다는
그 말..

참 무겁게도 들려온다.
그래도 그 무게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 분이 이곳에 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셨기 때문이다.

침례..
죽음 앞에 선 이가 죽음의 연습을 하던 날
그는 기꺼이 죽었다. 영혼의 장례식..
숭고하리 만큼 진지 했었 던..

그리곤 다시 태어나 빛나게 울었던 그이..

하늘에도 밤나무가 있을까..
밤을 유난히도 좋아한다는 그이가 밤을 실컷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늘에서는 가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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